우리가 동반하는 작은 우주
우리가 동반하는 작은 우주
  • 학교안가는김현서
  • 승인 2019.02.1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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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생명체에게든 ‘엄마’는 필요합니다. 엄마 또는 보호자로서 누군가를 책임지고 보살피는 것은 분명 고단한 일이지만, 비로소 깨닫는 자기 엄마에 대한 진정한 감사함, 그리고 고단함을 뛰어넘는 행복감과 충만감은 한 사람을 더욱 성숙하게 합니다. 여기, 학업을 잠시 접어두고 반려동물과 함께 인생의 의미와 행복을 찾아가는 우리의 아이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물론 컴퓨터로 동영상을 보거나 좋아하는 책을 읽기도 했지만, 어느 누가 보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였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기본적으로 생존에 필요한 시간을 빼놓고는 모든 시간이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다. 부모님의 잔소리 때문이었는지, 내 인생에 대한 책임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 학업, 진로, 장래에 대한 고민은 깊은 우울감에 빠진 나에게 너무 큰 주제였다. 강아지 키우기가 늘 인생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마침 학교를 가지 않기 때문에 여유로워진 시간 덕분에 작년 봄, 드디어 호두를 반려동물로 맞이했다.

나의 반려동물 호두. /사진=학교안가는김현서.
나의 반려동물 호두. /사진=학교안가는김현서.

 

호두는 크림색 암컷 토이푸들이다. 크림색 털 색깔 때문에 이름이 호두가 되었다. 마치 검은색 점 세 개를 찍어놓은 듯한 두 눈과 코, 라면사리같은 꼬불꼬불한 털이 매력적이다. 성격도 굉장히 밝고 활발하다. 낯선 사람한테도 꼬리를 흔들며 달려가 반길 정도인데 이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갈까봐 산책할 때 주변에 사람이 있으면 항상 리드줄을 짧게 잡는다.

이런 호두는 나에겐 큰 행복이기도 하면서 큰 책임감을 안겨주었다. 내가 밥을 주지 않으면 밥을 먹지 못하고, 내가 산책을 시켜주지 않으면 항상 집에 박혀있어야 했다. 마치 사람 아기처럼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내가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았다.

호두가 낯선 환경에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강아지 사회화 교육에 대해서도 관련 서적과 영상을 보면서 공부를 했다. 시끄러운 차 소리도 들려주고 내가 집에 없을 때도 들릴 노크소리, 나뭇잎 냄새와 시멘트 바닥의 촉감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주인 말을 잘 듣는 그런 명견을 만들고 싶다기보단 호두가 우리 가족과 함께하면서 편안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런 공부도 시작했던 것 같다. 강아지의 사회성을 기르는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산책도 하면서 강아지의 언어인 ‘카밍시그널’에 주의를 기울이며 나에게 호두가 “거칠고 부담스럽다”고 표현하는 방식들을 차근차근 익혔다. 8살 때 처음 상하이에 갔을 때 아무 것도 알아듣지 못했던 중국어를 하나하나 알아가고, 국제학교에서 영어로 단어와 문장을 배울 때처럼 하나의 외국어를 공부하는 기분이었다. 또 코를 사용하여 곳곳에 숨겨진 간식을 찾는 ‘노즈워크 놀이’를 위해 담요도 직접 만들고, 강아지의 씹는 본능을 해소할 수 있는 ‘터그놀이’도 하곤 했다. 하루 종일 호두에게 좋은 것, 필요한 것들을 고민하고 찾아보는 나를 보며 부모가 된다는 건 이런 느낌인가 싶었다.

예전에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강아지를 키우는 보호자가 많은데, 이 보호자의 우울증이 점차 치료됨에 따라 보호자가 바쁜 일상을 살게 되면 정작 강아지는 뒷전이 되고, 무관심 속에 혼자 집에 방치돼 결국 강아지가 보호자의 우울증을 떠안는 셈이 되기도 한다고. 우울증 치료용도로 강아지를 기르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글을 읽으면서 정말 사람은 이기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면서도 이게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혹시 내 마음의 병이 호두에게 옮겨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하고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나는 책임을 다하는 보호자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사실 나는 정말 부족한 보호자다. 다른 보호자들은 자신의 반려견과 함께 뛰어 놀기도 하고 수영장과 애견펜션, 애견카페에 놀러가기도 하며 강아지 친구들을 만날 기회도 많이 제공해주는데 나는 활동적이지 않아 호두와 놀아줄 때마다 가만히 앉아서 공을 던져주거나 물고 당기는 놀이 정도 밖에 해주지 못한다. 집돌이라 애견 운동장 같은 곳도 데려가주지 않고 늘 가는 아파트 단지 산책길에서 산책을 한다. 다른 보호자들은 서로 마주치면 금세 친해지고 강아지들과 같이 평행 산책도 하며 나중엔 주기적으로 만나고 연락도 하는 좋은 사교성을 갖고있기도 한데, 그와 달리 나는 사교성도 좋지 못해 나에게 다가오는 보호자들과도 그냥 몇 마디 대화만 나누다 지나쳐버리기 일쑤다. 그에 따라 호두는 친구를 사귈 기회도 많이 없어서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엄마를 떠올리기도 했다. 엄마는 사교성이 좋아 다른 엄마들과 쉽게 친해졌고 나 역시 그분들의 자녀들과 친해질 기회가 많이 생겼었다. 엄마가 엄마들 무리에 끼지 못하는 그런 낯가림이 심한 사람이었다면 낯가림이 심한 성격인 내가 친구를 사귈 기회가 더욱더 많지 않았을텐데 나는 정말 엄마를 잘 만났다는 생각도 들곤 했다.

호두의 우주에서 나는 절대적 존재다. 호두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싶다. /사진=학교안가는김현서.
나는 부족한 보호자다. 그렇지만, 호두의 우주에서 나는 절대적 존재다. /사진=학교안가는김현서.
호두의 우주에서 나는 절대적 존재다. 호두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싶다. /사진=학교안가는김현서.
호두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싶다. /사진=학교안가는김현서.

 

피곤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와도 항상 꼬리를 흔들고 얼굴을 핥으며 나를 반기는 호두는 늘 나에게 큰 힘이 된다. 앞으로 나의 인생길에서 호두와 함께할 일이 많다는 게 기쁘고 기대된다.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내일이 기대되는 그런 호두였으면 좋겠다. 호두의 견생은 짧겠지만 그렇기에 호두와 함께하는 시간을 더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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