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진의 HOW?] 왜 여성해방이 노동해방인가
[김은진의 HOW?] 왜 여성해방이 노동해방인가
  • 김은진 칼럼니스트
  • 승인 2018.12.26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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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로스쿨 농생명과학법 교수이자, 한국의 농업ㆍ농촌과 먹을거리 문제와 관련해 폭넓은 현장활동을 벌여온 필자, 김은진 교수에게서 들어본다. 사소한 듯 사소하지 않은, 그래서 엄마들이 잘 알지 못했던 문제들. '어떻게' 여기까지 번져온 문제들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가야할지' 실마리를 찾는 일까지도. /편집자 주.
 
 

2018년 올해가 저무는 마당에 올해 여성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했던, 그리고 여전히 중요한 주제는 아마도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관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자기결정권에서 올해의 핵심은 자신의 몸에 관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즉, 누구와 성관계를 할 것인지, 내 몸에 다른 생명체인 아이를 가질 것인지 말 것인지, 이 두 가지가 올 한해의 화두가 아니었나 싶다. 물론 이 두 가지 문제는 여성운동에서 아주 오랜 동안 쟁점이 되어왔지만 올해처럼 세대와 성별을 넘어서서 지지를 받았던 적은 없었던 듯하다.

 

■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여성이라서’

그러나 내가 가진 성별이 ‘여성’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두 가지만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는 ‘여성’이라는 사실만으로 견뎌내야 하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다.

1980년대, 필자가 20대이던 시절에 대한민국 사회는 큰 변화를 겪었다. 여성운동에 큰 변화가 온 것이다. 1960-70년대 대한민국은 여성들에게 고등교육을 시키지 않던 사회였다. 당시의 여성들은 어린 나이에 식모살이를 가거나 조금 배우면 공장에 취직했고 좀 더 배우면 경리나 비서로 취직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렇게 돈을 벌어 오빠와 남동생 학비를 대주다 나이 차면 선을 봐서 결혼하는 것, 결혼하면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하는 것, 이것이 그때까지만 해도 당연한 듯 받아들여졌던 우리나라 여성들의 삶이었다. 그러나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이듯 부모는 자신의 한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으려 한다. 그 시절을 살아낸 여성들은 자신들의 한, 특히 못 배운 한을 자신들의 딸에게는 물려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했던 걸까? 1980년대 들어서면서 여성들이 고등교육을 받는 비율이 급속도로 높아졌고 1990년대 이후에는 교육기회에서 적어도 경제적인 문제는 있을지언정 성별의 문제는 거의 사라진 듯 보인다. 금녀의 직업군도 거의 사라졌고 이제는 역차별이 문제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어쨌든 오늘은 그 1980년대의 여성운동에 관한 이야기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여성운동이 매개가 되어 우리가 어떤 삶을 선택했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고등교육을 받는 비율이 늘어나면서 1980년대 중반에는 대학졸업장을 들고 사회에 나오는 여성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985년 국내 기업 최초로 대우그룹이 대졸여성을 따로 공채로 뽑았을 당시 26대1의 경쟁률을 보였을 정도이다. 물론 그 이전에는 성별 구분없이 대졸자를 뽑았지만, 여성대졸자가 취직을 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의 어려움이 있었다. 군필자에 대한 가산점, 연령차별 등 여러 개의 장벽을 넘어서야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교육기회는 주어졌으나 이를 사회에서 펼칠 기회를 좀처럼 얻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막상 힘들게 취직을 해도 주어지는 일들은 주로 커피심부름부터 온갖 잔심부름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런 현상은 시민사회단체에서도 비슷했다. 오랫동안 그런 잔심부름을 당연한 듯 받아들인 데는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한몫을 했다. 그러나 고등교육을 받아도 그 현상은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그것이 고등교육을 받았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남녀차별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 차별을 위해 싸우는 여성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성들의 치열한 투쟁 끝에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이 만들어졌고 20년 후 2007년 이 법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개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니 말이다.

 

■ 가사노동 경감과 가전기업의 활황- 그 이면

사회에서 여성들의 활동이 늘어날수록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여성들의 몫이라고 생각했던 가사노동의 문제가 화두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이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가사노동의 분담이 필수적이다. 자, 이제 이 가사노동의 분담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가사노동의 문제는 가장 먼저 그 노동을 분담할 남편과 담판을 지어야 한다. 그리고 남편과 둘만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마을이 함께 고민해야 하고, 마일이 못하면, 지방정부가, 지방정부가 못하면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왜냐하면 가정이 바로 국가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구성단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절, 남편부터 국가까지 아무도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하지 않았다. 오히려 1980년대 후반 노동조합이 활성화하면서 임금총액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네 까짓 게 벌면 얼마나 번다고 일한다고 하냐. 그냥 집에서 살림이나 잘해라”는 말이 진리라도 되는 듯 회자되기도 했다.

이제 이 문제를 누가 해결할 것인가. 그때 이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은 놀랍게도 기업이었다. 기업이 나서서 온갖 가전제품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밥은 밥솥이, 빨래는 세탁기가, 청소는 청소기가, 그리하여 혼수품 목록에 가전제품이 필수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자, 이제 하나씩 예를 들어보자. 솥에다 밥을 하려면 한눈을 팔면 안 된다. 밥물이 끓어 넘치면 안 되니까. 그러나 전기밥솥을 샀더니 알아서 밥물이 끓어 넘치지도 않고 알아서 보온까지 된다. 그렇게 집집마다 전기밥솥을 샀다. 그래도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 쌀 씻고 취사스위치를 넣는 것은 여성의 몫이다. 남성은 여전히 그 시간까지 자고 있는데 왜 여성만 해야 하나? 그렇다. 그래서 여성도 새벽에 잠을 잘 수 있도록 예약기능이 있는 밥솥이 나왔다. 밤에 잠자기 전에 쌀 씻어 시간 맞춰 놓으면 딱 그 시간에 맞춰 밥이 된다. 이제 너나 할 것 없이 밥솥을 바꿨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밤에 잠자기 전에 쌀 씻어 예약하는 것은 또 왜 여성만 해야 하나. 그 시간에 남편은 누워서 tv를 보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기업이 또다시 나섰다. 씻어놓은 쌀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씻어놓은 쌀 넣고 스위치만 넣는 것, 그것은 또 왜 여성의 몫인가. 그랬더니 기업이 또다시 ‘즉석밥’을 만들어 내놨다. 이제 누구도 밥을 할 필요가 없다. 그 사이 밥솥값은 열배 이상 올랐다.

청소는 청소기에 맡기면 된다. 어깨에 메고 쓰던 청소기가 바퀴달린 청소기가 되고, 신발을 벗고 사는 문화에 맡게 걸레질이 가능한 청소기가 나오고, 일일이 끌고 다니는 일도 할 필요가 없는 로봇청소기까지 나왔다. 빨래는 세탁기에 맡기면 된다. 탈수만 가능하던 것에서 세탁과 탈수가 되는 두 개의 통으로 이루어진 세탁기를 거치고, 하나의 세탁조 세탁기를 거쳐 이제는 건조까지 가능한 세탁기가 나왔다. 심지어 식기세척기 등장으로 설거지에 이르기까지 가사노동의 상당부분을 기업이 책임(!)지게 된 셈이다. 그렇게 가전제품이 하나하나 새로운 것이 나오고,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면서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설거지를, 빨래를, 청소를, 밥짓기를 대신해주는 가전제품이 마련되기까지 우리가 치룬 비용은 개인적인 부담에서 끝난걸까. 노동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과정이 생략된 데서 생겨난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있지 않나. /사진출처=인터넷.
설거지를, 빨래를, 청소를, 밥짓기를 대신해주는 가전제품이 마련되기까지 우리가 치룬 비용은 개인적인 부담에서 끝난걸까. 노동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과정이 생략된 데서 생겨난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있지 않나. /사진출처=인터넷.

 

사회에서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끊임없이 뭔가를, 그것도 기능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비싸지는 물건을 사야만 한다. 돈을 벌어도 벌어도 끝이 없다. 여성이 꿈꿨던 세상은 여성과 남성이 차별받지 않고 사는 세상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맞벌이를 해도 해결되지 않는 욕구만이 남게 된 것이다. 1980년대 가사노동 분담의 문제를 우리는 이렇게 돈을 벌어서 기업에서 파는 물건을 사서 해결하는, 철저히 자본에 의존하는 삶을 선택했다.

 

■ 아직 남은 숙제들

그렇게 30년이 지난 오늘,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가사노동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육아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애를 낳지 않는 저출산국가의 대열에 들어섰다. 가사노동 해결의 첫 단추를 잘못 꿴 탓이다.

1971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필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12년 동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이야기가 ‘북한의 여성은 불쌍하다. 애를 낳아도 자기가 못 키우고 탁아소에 맡긴다’는 것이었다. 21세기 지금 우리나라 여성의 소원이 그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북한의 여성은 불쌍하다. 밥도 밥공장에서 타 먹는다.’ 지금 우리나라 여성들의 소원 가운데 하나 아닌가?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에게도 선택의 기회가 있었다는 말이다. 1980년대 자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선택했다면 지금쯤 우리는 이렇게 힘겹게 살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라는.

기업의 이윤을 위한 공장대량생산과 이를 위한 표준화, 규격화의 문제로 인해 소규모 농가공이나 중소기업의 식품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도태되었다.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부엌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까닭이다. 대신에 기업에 취직해서 돈을 버는 노동만이 가치있는 것처럼 호도된 까닭이다. 그리하여 여성해방은 어느 정도의 ‘부엌해방’을 이루었는지 모르지만 진정한 노동해방의 길로는 들어서지 못한 것이 아닌가. 모두가 부엌에 들어갈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그 노동이 얼마나 중요한 노동이고 가치있는 노동인가에 대한 본질만은 지켰어야 하지 않았을까. 새해에는 이런 모든 것들을 함께 고민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보는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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