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의 날’...누가 만든 괴물일까?
‘국가부도의 날’...누가 만든 괴물일까?
  • 이정현 기자
  • 승인 2018.12.23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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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영화 스포일러가 상당부분 포함됩니다. /편집자 주.

영화 국가부도의 날/사진출처=CJ엔터테이먼트

문재인 정부는 '2019년 경제정책방향'을 지난 17일 발표했다. 묘한 우연의 일치로 1997년 IMF 사태를 배경으로 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누적 관객수 300만을 돌파했다.

 

20년전 「국가부도」와 맞닿아있는 나라경제

미국주도 하에 벌어진 '한국 IMF사태'

"과연 위기를 기회로 전환한 사례인가"

지금의 한국사회 경제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던 IMF 사태. 영화는 IMF 사태를 계기로 변하는 다양한 배경의 인물들을 설정했다. 작은 공장을 운영하며 사람 좋기로 소문난 갑수(허준호), 제 2금융권 직원으로 근무하는 머리 좋은 정학(유아인), 위기를 자신의 이득을 취할 계기로 만드려는 재정국 차관(조우진) 그리고 경제 위기를 어떻게든 극복하려는 한국은행 정책팀장 시현(김혜수). 이 네 사람은 1997년에도 2018년에도 존재할 현실감 넘치는 인물들이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사진출처=CJ엔터테이먼트
영화 국가부도의 날/사진출처=CJ엔터테이먼트

1997년 경제위기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홍콩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국가들의 연쇄적인 외환위기가 한국에도 불어 닥친 상황에서 시작한다. 비상식적으로 급격하게 빠져나가는 외국 자본들로 인해 외환 보유고가 바닥나고 곧 환율 폭등으로 이어진다. 시현은 국가부도상황을 국민들에게 선포하고 대책마련을 시급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는 경제위기 상황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며 OECD국가 가입, 국민소득 1만불 달성을 강조하여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린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사진출처=CJ엔터테이먼트
영화 국가부도의 날/사진출처=CJ엔터테이먼트

결국 환율 폭등과 기업들의 부도가 연달아 이어지며 국가부도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 상황에서 시현은 미국, 일본 등 국책은행에서 달러를 빌려 급한 외채를 상환하고 정부 자산을 담보로 해결하자는 ABS(자산유동화증권, 미래의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현재 시점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기법의 일종. 1998년 자산유동화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도입)를 제안한다. 하지만 재정국 차관은 IMF 구제 신청을 주장한다. IMF 구제가 도입되면 벌어질 부작용을 다른 국가를 통해 목격한 시현은 끝까지 반대하지만 재정국 차관의 지위를 이용해서 정부에 밀어붙인 결과 IMF와의 협상이 시작된다.

영화에서 갈등구조가 폭발하는 대목 역시 IMF와의 비공개 협상 과정이다. IMF는 협상의 선결 조건으로 6가지를 요구한다. ▲고금리 ▲금융시장 전면 개방 ▲금융기관 외국인투자 대폭 허용 ▲금융사 구조조정 ▲노동시장 유연화. 그리고 대선을 앞둔 시기 유력한 대선후보들에게 협상 결과를 이행하겠다는 각서를 받아오라는 요구에까지 이르렀을 때 협상은 일시 중단되기까지 한다.

IMF와의 협상이 우리사회 경제에 파란을 불러일으킬 것을 직감한 시현은 모라토리엄 선언을 주장한다. 말레이시아, 러시아처럼 지불유예를 선포하고 자국 내에서 대책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재정국 차관의 일방적인 협상 진행으로 무산된다. 결국 6가지 선결조건과 대선후보 각서까지 갖다바치며 우리는 IMF 구제금융을 받게된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사진출처=CJ엔터테이먼트
영화 국가부도의 날/사진출처=CJ엔터테이먼트

국민들의 금모으기 운동은 대기업의 빚을 갚는데 모두 쓰였다. 국민들은 하루아침에 명예퇴직과 비정규직 전환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았다. 회사 부도로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이들은 자살을 선택했다. 자살율이 급등하며 노숙자가 급증했다.

이 과정에서 환율 폭등과 부동산 매입으로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정학의 모습은 씁쓸함을 자아낸다. 재정국 차관은 미국중심의 경제개편에 만족을 표하며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로 시위하는 노동자들을 쓸어버리려고 한다. 경제위기를 막지 못한 시현은 20년 후에도 얘기한다. ‘위기는 반복된다. 끊임없이 각성하고 깨어있어야 한다. 순간의 선택은 계속 반복된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사진출처=CJ엔터테이먼트
영화 국가부도의 날/사진출처=CJ엔터테이먼트

영화는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는 경제위기에 우리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질문을 던지며 마무리된다. 국가부도의 날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IMF협상 이후 우리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논리에 따른 급격한 구조조정을 겪으며 경제양극화가 극대화됐다. 그리고 더 이상 성실하게 노력하면 잘 살수 있다는 믿음, 공동체 정서 또한 파괴됐다. 수저론, 갑질, 차별과 혐오가 만연해졌다. 결말에 갑수가 외국인근로자를 다그치며 아들에게 아무도 믿지 말라고 하는 장면은 우리의 모습과 씁쓸하게 겹쳐진다. 

이 변화는 당시 한국정부의 무능함, 경제전문가들의 안일함이 불러왔다. 하지만 IMF는 한국정부의 잘못에서 끝나지 않는다. 재정국 차관으로 상기되는 ‘검은머리 미국인’의 존재. 미국유학을 마치고 정부관료를 맡아 대기업과 손잡고 미국식 경제구조를 끌어들인 존재다. 이들은 협상과정에서 한국식 경제를 살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국민들의 간절함을 외면하고 미국의 무리한 요구사항을 무조건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들은 철저하게 개인의 부를 축적한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사진출처=CJ엔터테이먼트
영화 국가부도의 날/사진출처=CJ엔터테이먼트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조정하는 실체는 미국이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IMF 협상 당시 비밀리에 방한한 미국 재무부 차관은 협상조건을 직접 제시하고, 대선 후보에게 각서를 받아낸다. 한국의 경제 개방을 미국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미국이 최대의 이익을 얻어내는 모습을 담아낸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양극화가 극심해진 경제위기에서 하루하루 살고 있다. 비정규직을 넘어 계약직, 파견직, 하청업체 노동자가 넘쳐나고 국민들은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빈곤자살'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다. 국가부도로 변한 것은 국민들의 삶이다. 국민들의 삶을 짓밟은 배후에 서있는 미국의 존재를 담아낸 영화가 소름끼치는 사실은 이것이 영화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끌어가는 핵심인물인 시현 역을 맡은 배우 김혜수의 연기는 일품이다. 그가 맡은 역할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물이라서 참 다행이다. 우리사회에서는 지금도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수많은 선택을 요구받는다. 절망에 가까운 사회를 만든 주범이 누구인지 똑똑히 보고 깨달아야한다. 미국식 신자유주의는 위험의 외주화로 대기업 프렌들리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국민 하나하나가 깨어있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는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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